배움의 전당만은?
배움의 전당만은?
  • 이기원
  • 승인 2016.07.14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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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어려운 가정형편,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제때에 못다 한 공부는 평생 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학문에 뜻을 두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50대, 60대의 노년의 사람들이 많다. 늦게 공부를 하기로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결심이다. 그리고 값진 일이다.

학문·예술 등 그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 배움의 전당이다. 왜? 배움의 전당마저도 양심을 속이고 사익에 눈멀어 도덕과 윤리를 버리는 것일까? 대전예지중고 교장의 갑질 논란으로 교육계가 시끄럽더니 또다시 우리사회가 시끄럽다. 국민을 가축에 비유한 정부 관료의 언행은 참으로 개탄스럽고 차마 입에 거론하기도 창피할 정도다. 도무지 이해 못 할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도덕과 윤리를 가장 먼저 실천하고 가르쳐야 할 곳이 배움의 전당임에도 이곳마저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져서야겠는가? 교육계 스스로 성찰이 시급히 필요한 때이다. 

나는 60대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인천에 소재한 학교로 출발한다. 종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늦은 밤이다. 출석은 물론 백퍼센트다. 이제 6월로 5학기를 마쳤다.
이번 5학기는 교양과목 2과목만 신청하면 됐는데 수강신청 때부터 문제가 생겼었다. 5학기 교양과목 수강신청이 불가했다. 수강시스템이 잘못 짜여 있어서였다. 부랴부랴 짜인 교양과목은 교수가 아닌 강사의 강의를 신청하게 되는 모호함이 발생했고,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성적확인 오늘부터 가능합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기대감으로 성적 확인을 했다. 늦게 공부를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신중과 정확을 기한다. 최선을 다한 만큼 당연히 좋은 성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교양과목 강사의 강의평가도 예의상 가장 높게 평가했다. 강의평가를 먼저 해야만 성적확인이 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강의평가를 먼저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주 낮은 점수는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하여 갑자기 진땀이 흐른다. 이렇게 낮은 평가는 처음이라서.

 그 강사를 처음 대했을 때 그 선입견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묘한 떨떠름한 기분 나쁨. 나는 최선으로 과제를 제출하였고 시험지도 꽤 열심히 작성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다른 학우들도 최선으로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잠시 학문에 대한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순간이다. 정말 화가 나서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화를 다스리며 강사에게 정중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성적 정정 요청을 요구하는.

학문에 목표를 두고 최선을 다한 삶의 목적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무용지물이 돼버린 느낌이다. 그냥 지나칠 하찮은 일로 받아들이기엔 정말 많이 속상하다. 강사 한사람의 속됨으로 하여 왜? 학생이 애먼 속상함을 겪어야 하는지. 학교 측에서는 학생을 생각한다면 강사채용 시 신중을 기할 것을 바란다. 진정한 학문의 전당이 될 수 있도록.

낮은 점수 때문에 무지무지 속상한 내면의 생각을 바꾸려 해도 마음은 영 불편하고 속이 뒤틀린다. 그 강사에 대하여 좋게 평가한 강의평가를 모두 다 바꾸고 싶다. 가장 낮은 평가로.
성적을 먼저 확인하고 강의평가를 하는 것이 맞는데 그와는 반대로 된 성적확인 시스템 자체도 바꿔야 맞을 것 같다. 약자 이론이 작용하는 학생입장에서는 교수는 물론 강사의 강의 평가를 예의상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아주 형편없는 성적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리 낮은 점수를 매긴단 말인가. 강사의 성찰을 요구한다.

내가 보낸 성적 정정요청 메시지에 답이 왔다. 이수만 하면 되니 섭섭하더라도 이해를 부탁합니다. 라고. 이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충격과 황당함으로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나에겐 성적도 중요합니다. 이수만 하면 된다는 개념은 나에게는 없습니다.’ 라고 답 글을 보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을 격지 않으려면 진정한 학자의 강의를 신청하는 게 최선인 듯싶다. 그렇다고 그 강사를 비판하려는 차원은 아니다. 단지 충격으로 인한 어이없음의 표현이다. 더 큰 문제는 이수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강사의 그릇된 자질이다. 그게 강사가 해도 될 말인지.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학문을 닦는 입장에서 자질을 갖춘 강사를 요구하는 바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특성상 자녀들이 장성하였거나 출가를 시킨 만학도가 대다수이다. 그 강사말대로 이수만 하면 그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이다. 강사의 자질로 인하여 학생이 불편함을 겪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한 후 성적에 대한 기대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충격과 어이없음은 아마도 시간이 약이 되겠지만, 뭔가가 정말 씁쓸하다.

최선을 다하고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 돌아올 때는 누구라도 속상하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어본 사람들은 백번 이해와 공감을 하리라는 합리화로 어지럽힌 머릿속을 정리한다. 억지라도 꿰맞춰 위로를 삼고 싶은 심정이다. 늦게 배움을 결심한 학생인 나에게 강사의 속됨은 만학의 값진 꿈을 짓밟아 엉망으로 만들었다. 늦은 나이에 고귀한 배움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양심을 버린 강사나 교육자는 교육현장에서 발붙일 곳이 없도록 강력한 대책과 그 방안이 마련되길 염원한다.

낮은 성적은 나를 속병 나게 했지만 다행히 이런 삶의 애환을 글로 적어낼 수 있는 공간 저널디가 있기에 늘 감사하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한 경험들, 속상하고 화나는 경험들을 글로 적어낼 수 있으니, 그로 하여 차원을 높이는 순화의 마음을 갖게 되고 속상함을 덜어낼 수 있으니, 분개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던 마음을 추스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성적은 잊기로 하자. 이수만 하면 된다는 그 속됨이 불쌍타 치부하자. 이까짓 일에 열 받지 말자. 제발 이런 강사는 절대로 만나는 일이 없게 해주소서.

이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치밀었던 화를 다스리며 속상한 마음을 접기로 한다. 성적을 만회할 학문의 기회는 또 올 터이니 그때 다시 채우면 될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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