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캐스터에 대해 모르는 것들
야구 캐스터에 대해 모르는 것들
  • 장진웅 기자
  • 승인 2016.04.2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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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프리랜서 방송인
▲ 김경훈 프리랜서 방송인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진행자 박경림은 방송에서 항상 이렇게 외친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 때,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가능성이 0%가 되는 순간까지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이 말의 원조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로 활약한 '요기 베라(1925~2015년)'의 명언이다.

나는 야구가 좋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정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완전한 평등은 불가능하지만, 야구는 공평하다. 양 팀에게 같은 수의 공격과 수비의 기회가 주어지고, 잘하든 못하든 경기에 나온 모든 선수는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욱 흥분시키는 건 '역전 가능성'이다. 9회 말 투아웃이라 할지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할게요."

지역방송국에서 TV 야구 캐스터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었다. 너무 좋으면 품위를 잃는다던가. 기쁜 마음에 펄쩍펄쩍 뛰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렇게 시작된 '야구 캐스터'는 나에겐 더 없는 영광이었다.

방송은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건 전국방송의 경우다. 지역 방송사의 야구 중계는 '편파방송'이다. 홈팀과 원정팀의 비율이 대략 7대3 정도 되지만 실제론 9대1에 가깝다. 대전의 경우, 프로야구 중계는 내가 일하던 종합유선방송사(CMB) 외에도 공중파 3사(MBC, KBS, TJB)가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었다. 혹시 TV와 라디오 중계의 차이를 아는가?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 본다. 홈 팀 타자가 외야 쪽의 큰 타구를 쳤다고 가정해 보자. TV 중계 캐스터는 평범하게 말한다.

"좌측으로 당겼습니다. (화면을 보며) 외야 쪽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좌익수가 달려와 잡았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이보다 멘트의 양이 훨씬 많다.

"제3구. 쳤습니다. 상당히 높이 뜬 큰 타구. 외야로 쭉쭉 뻗어갑니다. 좌측~, 좌측~~ 아, 그러나 좌익수가 담장 근처에서 잡았습니다."

만약 청취자의 상상을 자극하지 못하면 실력이 없는 캐스터다. 

"쳤습니다. 좌측 펜스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좌익수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좌익수가 처리합니다.”

프로야구 캐스터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문가는 없는 법. 열심히 하면 될 거란 생각에 한 달 동안 맹연습을 했다. 기록지에 기록하는 방법을 배웠고, 경기장 내에서 시시각각 벌어지는 상황을 전해주기 위해선 임기웅변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면서 상점 간판을 모두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했다.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을 때 조용히 먹는 것이 아니라 뭐든 중얼거렸다. 

"2번 타자 김경훈 선수, 아내가 던진 젓가락 사인에 맞춰 숟가락을 짧게 잡았습니다. 제1구. 아, 그러나 한복판으로 들어온 실투성 된장찌개를 그대로 흘려보냅니다. 아마도 옆에 있는 김치 국이라는 변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소릴 해댈 때마다 아내는 시끄럽다고 타박했지만, 나는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었을까. 첫 중계를 무사히 마쳤다. 긴장한 탓이었는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첫 중계였기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인터넷 카페에 네 실수가 나오더라?"

"뭐라고? 알았어. 한번 볼게."

팬 카페에 들어가 봤다. 세상에! 내 실수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깊숙한 내야 땅볼을 착각해 '안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는데 그걸 써놓은 것이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한 실수였는데 그걸 꼬투리 잡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한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밑에 달린 댓글이었다. 

"캐스터의 '설레발'이 어찌나 아마추어 같던지…."

순간 얼굴이 화끈 거리고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상대를 무시해서 되겠는가. 누구든 그럴 권리는 없는 법이다. 설레발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댓글을 달아 놓았다. 

"제가 그 캐스터인데, 교양 없이 '설레발'이 뭡니까?"

다음날, 카페에 다시 들어가 보니 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설레발은 표준어입니다."

아, 그때의 민망함이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글 아래에는 주렁주렁 악성 댓글이 달려있었다. '뭘 잘했다고.', '자랑 질인가?', '야구도 모르면서.' 

나는 무서웠다. 그들의 집단적인 행동에 공포심마저 들었다. 아, 연예인들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나와 닮은 무리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더니 그 팬 카페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자정능력이 없었다. 타인의 실수를 포용하고 넓은 아량으로 감싸주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왜 상처를 받는단 말인가. 그때 깨달았다. 이 일을 하려면 칼날처럼 날 선 비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이 일을 하는 대가이자 수업료라는 것을. 

사람들은 말한다. "참 좋은 일을 하시네요." 그럼 나는 속으로 말한다. "딱 9회까지만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프로야구 캐스터에게도 고충이 있다.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이다 보니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다. 경기당 대략 4시간 정도를 잡지만 그보다 오래하는 경기도 많다. 내 괴로움이 이거다. 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을 갈수가 없다. 축구는 하프타임에 다녀올 수 있지만(나는 프로축구 캐스터도 했었다) 야구는 공·수의 교대 간격이 짧다. 그 때문에 우리(캐스터, 해설위원)는 경기시작 1시간 전부터는 액체로 된 것은 마시지 않는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5회에 구단 여직원이 수고한다며 중계부스로 커피를 들고 오면 어찌나 야속하던지….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다. 커피 한잔쯤은 괜찮지 않겠냐고 말할 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커피는 소변을 유발하는 '이뇨작용'이 있기에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7회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이외에도 에너지 드링크, 녹차, 홍차, 탄산음료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간혹 팬들이 중계석까지 음료수를 사오면 겉으론 '고맙다'고 연신고개를 숙이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이런 수고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

물론 비상시를 대비해 의료용품점에서 파는 소변 통을 부스에 비치해 놓지만 여러 사람(캐스터, 해설위원, PD, 음향 엔지니어까지 총 4명)이 모여 있는 좁은 공간에서 볼일을 보기란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힘들다. 게다가 냄새와 소리는 어떻고….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홈팀이 3대 1로 지고 있던 경기를 9회 말에 동점을 만들었다. 관중들이 흥분하며 난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겁이 덜컥 났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헉! 연장전을 해야 되잖아? 그날 나는 연장전 내내 거의 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누가 이기든 빨리 끝나라.'

이런 고충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사랑했다. 내가 이 직업을 천 년 만 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하는 순간만큼은 내 열정을 모두 녹여 내고 싶었다. 당시 나는 야구에 미쳐 살았다.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친구들과 수다 떨 때도 오직 '야구' 생각뿐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전에는 몰랐지만 야구 캐스터를 하며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즐거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걸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평범한 일에도 감사해 하는 것처럼, 행복하고 좋은 것일지라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즐겁지 않다. 

둘째, 타인의 비난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슈퍼맨이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다 할지라도 그의 의상 가지고 트집을 잡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그런다면 내 자존심만 흔들릴 뿐이다. 대처 방법은 한가지다. 너는 지껄여라. 나는 내 갈 길을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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