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엄마를 찾습니다.71년생 김문수
 2018-12-13 02:25:04  |   조회: 135
10년 가까이 낳아주신 어머니를 찾고 계신데 아직도 못찾으셔서 이렇게 사연이라도 올려서 찾을수있다면 도움이 되고자 올립니다.ㅠ

트라우마로 아직도 결혼도 못하시고 어머니를 찾고 계시네요,

혹시 주변에 이런 사연과 연관 있으신분을 아시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글이 길지만 정말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자주 가시는 사이트나 카페에 글 공유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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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아버지는 이미 가정이 있는 상태였고 자식이 다섯명이나 있는 집이였습니다.

3살까지는 출생신고도 안되어 있는 상태로 생모와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3살때 친부와 계모의 호적으로 올라가면서 친부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원래 나이대로 출생 신고는 해주셨더군요.

생모는 서울에서 살고 저는 성남의 생부집에서 살았지만 생모는 자주 내려와서 저를 보고 가셨습니다.

그러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얼마뒤 생모가 저를 다시 데려다가 서울에서 키우셨습니다.
8살부터 10살 까지... 서울에서 생모와 살며 학교를 다녔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80년대 젊은 여성이 혼자 애를 키운다는건 힘든 일이였지요.
어렸을 때지만 생각나는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던건 생각 납니다.
하지만 인생를 통틀어 그때가 저에겐 가장 행복한 유년시절이였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건 어려운 생활에도 저에게 생모가 어린이 전집을 사다주신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일나가시면 혼자서 읽던 파브르곤충기나 위인전집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누군가 저만을 위해 그렇게 신경써주는건 그때가 처음이였으니까요.

그러다 어느날 밤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싸움이 있었고 아직도 잊지못하는건 내손을 끌고 가는 아버지에게 안따라 간다고 하다가 뺨을 엄청 쎄게 맞은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맞아서 별을 보았던 순간이였죠.

그렇게 다시 생모와 헤어져서 성남의 아버지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 후 한번인가 학교앞으로 생모가 찾아오셨던 기억이 납니다만 어느날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고 이사간 곳으로는 생모가 찾아오지 못하셨습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제 본적도 아버지가 바꾸어 놓으셨더군요.
이복 형제들과 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많게는 15년 차이가 날정도지요.

그러다 보니 너무 어려 다른 형제들에게 구박 같은건 받지 않았지만 혼자였습니다.
오히려 다른 친척 어른들의 눈치가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집안의 장손이라 이런 저런 친적분들이 제사때나 그럴때 자주 왕래를 하는데 저는 그냥 밖에서 데려온 자식으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의 분위기상 저는 절대 생모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지요.
아무도 없을때나 생모를 생각하며 어린 저혼자 울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딱 옛날 나쁜 아버지의 표본같은 분이시죠.
가부장적이며 집안 경제 생각 안하고, 술 좋아하고, 술드시면 집에서 폭력, 그리고 외도... 종합 선물 세트 같으신분 입니다.
그리고 집의 경제 사정도 점점 안좋아 지더니 나중엔 아버지 집도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 공부도 신경 안쓰신분이셨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때 공고를 가서 빨리 돈벌으라는 아버지 말에 그래도 대학을 가고 싶었던 저는 몰래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이사실을 아신 아버지는 어느날 술을 드시고 들어와 학교를 안보내겠다고 가방을 찢어버리고 날리도 아니였습니다.

어릴때는 언제나 생모가 찾아와줬으니 언제가 다시 올거라 생각하고 컸고 조금 더 자라서는 그래도 제대로 커야 생모를 만날것 같은 생각에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고3때 막상 대학을 가려니 등록금 생각이 나더군요.
아버지는 학비를 줄 능력도 의지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나마 선택한것이 전문대를 가는것이였지요. 4년제는 도저히 엄두가 안났습니다.
처음 입학금만 어떻게 융통해서 받아 등록하고 나머지는 알바를 해서 등록금 마련과 생활비를 벌어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혼자나와 살기 시작했구요.
학교외에는 아르바이트... 방학때도 아르바이트...그렇게 죽기살기로 해서 졸업장을 따게 되었습니다.

물론 생활이 이렇다 보니 생모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도 힘들때 였습니다.
3월에 졸업을 하고 5월에 바로 영장이 나와 군대를 가게되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 집에 찾아가 아버지에게 생모에 대해 물어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듣기로는 결혼에서 잘 살고 있으니 안찾는게 좋다
딱 이렇게만 말씀하시고는 더 이상 생모에 대해 말해주지 않더군요.
물론 당연히 결혼 했을거란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당시에는 젊은 나이라 원망도 들더군요.
그래서 나를 찾지 않으셨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호적상 결혼도 자식도 없이 결혼하셨는데 잡자기 아들이라고 나타나면 생모에게 고민만 줄것 같기도 하고 이혼하고 재혼한 어머니들도 그 전에 낳았던 자식이 찾아보면 많이들 싫어라 한다는 이야기도 듣으면서 생모를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생모의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시면 나를 찾아 오시겠지 하면서...
그리고 아버지는 제 나이 31살때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 암 판정 받으시고 3달만에 돌아가셨지요.
생모에 대한 어떤 단서도 이야기 해주시지 않으시고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저도 집에서 나와 살았기 때문에 임종도 보지 못했고 생모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조차 없었지요.

군대를 제대한 3일 부터 아버지 집에서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장을 구했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못다한 공부를 하기위해 편입을 해서 다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그렇게 학사 따고 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20대 때는 먹고 살고 졸업장 따느라 못해본 연애 였지요,
어느 정도 교제 하던 중 여자의 부모님이 식사라도 하자는 제안을 받고 식사자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가 32살이였고 여자분 나이가 29살 이였으니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딸이 30살을 안넘겼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후 어느날 여자의 집에서 궁합을 보려는지 생년월시를 물어보더군요.
생년월일이야 알았지만 태어난 시는 어느 누구도 저에게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본가에 물어보니... 아무도 내가 태어난 시를 모르더군요.
저도 모르는 내가 태어난 시간은 세상에서 생모 뿐이 모르는 것이였습니다.
여자친구에겐 모른다고는 못하고 그냥 오후 2시쯤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여친이 말하길 궁합도 잘나왔다더군요.
그때 부터 여자친구도 그렇고 그쪽 부모님들도 계속해서 결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저도 그녀가 너무 좋았고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려고 보니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저도 내가 언제부터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막상 결혼이 현실로 다가오니 두렵고 죄책감도 들고 결혼도 하기도 전에 이혼하면 어쩌지 하는 안좋은 생각만 드는 겁니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결혼전에 원래 걱정도 되고 그런거다 하면서 좀 지나면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저는 그 정도가 아니였습니다.
결혼한다는게 무슨 큰 죄를 짓는것 같고 이걸 피하기 위해선 아무도 없는 산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진정 사랑하기는 했기에 최대한 ... 내린 결론이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하지 말자는 것이였습니다.
결혼 자체도 두려웠지만 결혼식 자체는 ....
많은 하객들 앞에서 우리 결혼한다고 하는것 자체를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결론는 당연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상적인 여자가 저런 조건을 받아들이 겠습니까?
싸우고 싸우다 보니 둘 다 지쳐서 헤어지게 되더군요.
저도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닌가 하고 단념을 한것도 있습니다.

그 후로 2-3번 더 다른 교제를 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결혼까지 가지를 못했습니다.
혼자살 팔자려니 그렇게 살다가 38살때 심리 상담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온 이야기가...
제 어릴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더군요.
결혼, 가정, 부모역할 그런것이 그냥 얻어 지는게 아니라 어릴때 자라면서 그런것들의 가치관이 생기는 건데 보통 입양이나, 이혼가정, 폭력 가정에서 자란 경우 결혼을 기피하거나 이성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안좋은 건 전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유년이절 이더군요.

두 집에 왔다갔다하며 살았고, 생모와는 생이별을 했으며, 본가에서는 투명인간 또는 스스로 눈치를 보며 살았고, 아버지의 음주, 폭력등....
거기에 저에게 생모를 찾지 않은 죄책감도 있다더군요.
결혼을 해서 내가 독립되 가정을 가지면 생모와는 완전히 이별이 된다는 불안감를 ...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 후로 미친듯이 어머니를 찾고 있지만 개인이 찾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서류상 생모의 흔적이 아무것도 없기에 몇년을 매달려도 찾기가 힘드네요.
부모가 있으나 부모가 없고 결혼해서 내 가정도 만들지 못하는 평생 외롭게 살아야 삶.
생모를 찾으면 다른 이들 처럼 왜 저를 버리셨어요? 그런 질문은 안할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정도는 이해합니다.

단지 살아생전 어머님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 다음 생애 한번 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날 테니 그때는 우리 그냥 평범한 엄마와 아들로 살아 봅시다. "

오늘도 어머니를 찾고 있습니다.

어머니 찾기 블로그 https://blog.naver.com/zacools
2018-12-13 02: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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